2004년 1월 기사 中 _
72년생이면 지금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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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고은님이 전하는 ‘나이 먹기’의 즐거움
몸의 신경세포와 솜털 하나까지도
일제히 곤두서 있던 나의 십대와 이십대
‘아마 그때 내 체온은 39도쯤 되지 않았을까?’
지난 연말 이사를 했다.
부모님 계시는 본가에서 아주 나오는 거였다.
독립이라고까지 하면 너무 거창하고,
그냥 이제부터 혼자 살기로 했다.
앞으로 갑자기 못돼먹은 성격을 고치고
무려 결혼씩이나 하게 될지 아니면
평생 혼자 아침밥을 먹게 될지는 몰라도,
좌우간 한평생 사는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온전히 혼자만의 인생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였다.
짐을 꾸리다보니, 30년치 세월이 침대 아래서 쏟아져 나왔다.
지난 30년 남짓 사는 동안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꾸러미와
상당히 성실하게 적어온 일기, 수첩, 습작노트들이었다.
재미난 소일거리가 생긴 듯 가벼운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읽어 가는 동안 나는 곧 뺨이 훅훅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독했다. 도대체 그러고 어떻게 살았을까.
온몸의 신경세포와 솜털 하나하나까지 일제히 곤두서 있는 듯,
칼날 끝에 올라서 있는 듯, 너무 지독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래, 그랬었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 무심코 장롱 밑에서 딸려 나온 사진 한 장에
와르르 되살아나듯이 지난 십대와 이십대의 치열한 시간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맞다. 그랬다.
그때 나는 하루 24시간 온몸의 신경세포를 촉수처럼 곤두세우고
그 끝에 걸려드는 세상을 빠짐없이 느끼고 생각하고 끌어안으며 살았었다.
아마 그때 내 체온은 39도쯤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격렬함은 대부분 글로 발산되었다.
그 죽을 것 같은 신열을 떨어뜨릴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의 글쓰기는 가히 병적이었어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말고 갑자기 뛰쳐나가 가장 가까운 카페 구석에 앉아서
정신 없이 무언가 써내려 간 적도 있었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갑자기 신기 오른 무당처럼
캄캄한 방에서 달빛에 의지해 문장 한 줄 수정하지 않은 채
단편소설 하나를 끝낸 적도 있었다.
시를 짓는 작업 역시, 비록 훌륭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습작노트 속에 고스란히 숨쉬고 있는
그 시절의 섬세한 감성과 표현들
‘떡국 한 그릇씩을 더 먹었을 뿐, 나이를 헛먹은 것일까?’
습작노트들을 읽는 내내
나는 그 시절의 내 감성과 사고방식과 표현 등에 놀라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고… 웃기는 얘기지만 감탄하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었지? 지금은 왜 이런 생각을 못하는 거지?’
그러다 결국 광고지 뒷면에 내갈긴 낙서 한 줄에 의기 소침해지고야 말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네가 사람 두엇쯤 죽인대도?
아니, 네가 죽는대도.”
아아, 그랬구나.
과분한 칭찬을 들었던 나의 데뷔작
「번지점프를 하다」는, 근 10년을 해묵은 이야기였던 것이다.
또 있었다.
작년 새해에 방송됐던 단막극 「꽃」 역시,
열여섯, 중학교 3학년 때 하룻밤 새 썼던 짤막한 소설이었던 것이다.
시력과 함께 그림에의 열정도 잃어가던 소년이 낯선 소녀의 도움을 받아
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으나, 시력을 회복한 뒤 달려가 보니
정작 그 소녀야말로 선천적인 시각 장애인이었으며,
그가 혼신을 다해 완성한 자신의 그림은 세 살배기의 낙서나 다름없었다.
절망하는 소년에게 소녀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눈이 보이지 않을 때는 이 그림을 볼 수 있었어.
그런데 이제 시력을 되찾으니 더 이상 이 그림을 보지 못하는구나….”
편지지에 샤프펜슬로 써놓은 그 소설을 발견한 순간,
나야말로 절망스러웠다.
자괴감마저 들었다.
열여섯 살 때의 생각이나 서른한 살의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니.
열아홉 때의 감성과 스물아홉이 된 후의 감성이 똑같았다니.
나는 그저 해마다 떡국 한 그릇씩을 더 먹었을 뿐,
나이를 헛먹은 것일까.
처음부터 갖고 있던 것들을 곶감 빼먹듯 하나씩 하나씩 소진하다가…
결국은 밑천을 잃고 텅 비어버리는 게 아닐까.
나는 덜컥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리석고 유치한 생각들.
‘아아, 내가 지금 이 시절만 같으면 한 달에 한 편씩 영화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텐데.
뭘 쓸까, 어떻게 쓸까 머리와 가슴을 쥐어뜯지도 않고 소심한 자기검열 따위도 없이.
다시 그때의 체온을 찾을 수 있다면,
목소리를 팔아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처럼 어떤 거래라도 하겠어.
수명을 좀 달라고 해도 좋은데…’하는 정도까지
가난하고 조급해진 글쟁이의 궁상이 하늘을 찌르다가,
퍼뜩 위로거리를 찾아냈다.
나답게.
맥박이 펄떡펄떡 뛰는 글 대신 더 뜨끈하고 묵직한 글을 쓸 수 있을 나이
‘그래, 열정을 잃는 대신 작은 혜안을 얻었지!’
비 록 시작은 같지만, 낙서 한 줄, 편지지 두 장에서는 벗어나지 않았나.
발.전.적.이었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저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그날 하루치의 느낌과 생각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들은 마치 물 속의 톱밥이나 쇳가루처럼 얌전히 가라앉아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어떤 자극 -그 자극은 친구의 말 한마디일 수도 있고,
길가의 간판 제목일 수도 있고, 별 생각 없이 홀짝 들이킨 소주 한잔일 수도 있을 것이다
- 에 의해 일제히 들고일어나 내 정수리부터 새끼발가락 끝까지
뱅글뱅글 돌며 움직이는 게 아닐까. 그래, 그런 것 같다.
분명 10년 전엔, 그런 생각을 하고, 한 줄 메모를 할 수는 있었어도
결국 「번지점프를 하다」를 쓰지는 못했으니까.
그 내용과 그 인물들은 내가 스물아홉이나 먹었기 때문에
비로소 품을 수 있었던 거니까.
앞으로 또 한 십 년이 지나면 나는 또 ‘어떻게 그때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할 테지만,
서른 남짓 된 현재의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지척에 두고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그 무엇’을 그때엔 알게 될 것이란 확신이 생긴다.
비록 나이를 먹어버려 더 이상 선혈이 낭자하고
맥박이 펄떡펄떡 뛰는 글은 쓸 수 없을지 몰라도
대신 조금 더 뜨끈하고 묵직한 글을 쓸 수 있겠네.(있기를!)
열정을 잃는 대신 얻게 되는 작은 혜안.
아니면 혜안 비슷한 것이라도. 커다란 바위까지는 품지 못하더라도
지금처럼 늘 ‘폭풍 전야’ 같은 위험수위는 아닐 것.
세상을 모두 끌어안는 큰그릇은 감히 욕심낼 수 없지만
평생 단 한 사람만이라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그렇게 늙고 싶다.
새해 12월 31일 자정을 향해,
하루 스물네 시간 꼬박꼬박 일수 찍듯 열심히!
‘삼삼한 나이. 나는 이제 서른 셋이 되기 시작했다’
새해가 되니 여지없이 나이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이제 몇 살 된 거죠?” 질문자가
내가 이미 삼십대에 접어든 지 두어 해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일 경우엔,
백발백중 나의 과년함을 걱정하는 질문이다.
몇 살이라는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올해는 결혼 하셔야죠’ 라는 대사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는 대사를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나이 먹는 게 즐겁기만 한 나로서는,
이렇게 그의 말문을 막을 수밖에 없다.
“삼삼한 나이요.”
‘뻘쭘. 멀뚱. 머쓱’. 상대의 표정을 지문으로 쓰라면 그렇다.
후훗.
자, 나이 먹기가 또 시작됐다.
작년엔 좀 소득이 없었다.
올해는 좀더 분발하자.
하루 스물네 시간 꼬박꼬박 일수 찍듯 열심히.
그래서 올해 마지막 날,
12월 31일 자정엔 지금보다 온전히 365일치는 더 늙어 있도록.
잘. 예쁘게. 삼삼하게.
삼삼한 나이. 나는 이제 서른셋이 되기 시작했다.
Profile
작가 고은님
1972년생 / 인하대 독어독문과 졸업
2001년 대종상&청룡영화상 시나리오 부문 수상
- 작품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1) ‘아 유 레디?’(2002)
드라마 MBC 베스트극장 ‘꽃’(2003), SBS ‘첫사랑’(2003)
2005년 현재 MBC미니시리즈 <환생-NEXT>
인생의 ‘메인 디시’를 즐기고 있는 그녀, 고은님
극장에서 세 번, 비디오로 두 번.
아무리 좋아도 같은 영활 두 번 이상 보게 되진 않는데,
‘번지점프를 하다’만큼은 그렇게 도합 다섯 번을 보았다.
TV에서 봤던 것까지 합치면 두 번 정도를 더 쳐야 하니,
이쯤 되면 소위 ‘컬트영화’라고도 할 만하다.
인우(이병헌 분)의 죽은 첫사랑 태희(이은주 분)가 수년 후,
교사가 된 인우의 남자 제자로 다시 태어나고,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베스트극장을 통해 방송돼 화제가 됐던 단막극 ‘꽃’이나,
최근 종영한 드라마 ‘첫사랑’에서도 작가 고은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천 명의 사람이 있다면 천 가지 사랑이 있고,
누구든 그 어떤 형태의 사랑에도 돌을 던질 수는 없다”는 그녀의 말 속에는
‘사람’에 대한 깊은 존중과 ‘사랑’에 대한 강한 신뢰가 스며 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여자의 나이는 유죄처럼 취급받는 현실.
그래서 더더욱 ‘여자의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연륜이 지긋한 여류인사에게서 ‘나이 먹는 지혜’를 들어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나,
서른을 이제 두어 해 넘긴 시나리오 작가 고은님이 먼저 떠올랐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느낌에 최초로 사로잡히게 되는
‘서른’이라는 나이의 상징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른이 되던 해, 그녀는 서른이 돼서 행복했단다.
이십대라 우기는 것 같아서 그저 싫었던 스물아홉 대신
이제 제대로 삼십대가 돼서 참 좋았단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지만,
잔치는 이제부터라고, 지금까지는 애피타이저에 불과했다고,
이제 정말 메인 요리를 즐길 시간이라고 자축했단다.
나이가 들수록, 날〔生〕 것처럼 펄펄 뛰던 열정이 사그라진다고들 말한다.
서른, 마흔, 그리고 쉰…
숫자 하나가 바뀌는 시점에서는 더더욱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늙어가지만,
나이 먹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의 채도가 확연히 다를 것이다.
그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작가 고은님,
그녀의 마흔, 그리고 쉰이 벌써부터 궁금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당장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기는 하다.
명치끝이 지근지근 저릴 정도로 인간 감정에 깊이 있게 천착하는,
치밀할 정도로 절절한 그녀만의 대사를 다음 영화에서 어서 또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것.
진행 / 박연정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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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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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8 04:28)
수님께서 게시물을 수정하셨습니다.(2008-02-18 04:28:15)